배우 박원숙은 최근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를 진행하며 활발히 활동중인데요,
외로움과 아픈 사연은 서로 나누고 위로하며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는 박원숙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1970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녀는 50여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작품을 했는데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 당시 연극을 함게 하던 첫사랑과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연극 소품을 사고 놀다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숨기위해 여관에 갔다고하는데요,
그렇게 아이가 생기게 된 두 사람은 결혼을 하였고 박원숙은 다니던 대학교를 중퇴했다고 합니다.
아들을 낳은 두 사람은 행복한 날을 보냈지만 1981년 남편의 잇다른 사업 실패로 결국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걸까요?
3년 후 박원숙은 이혼한 남편과 재결합을 하게 되는데요,
아들을 위해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는 그녀는 재혼 6개월만에 다시 이혼을 하게 됩니다.
바로 전 남편에게 또 다른 여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의 상처를 입은 박원숙은 1989년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사업가와 세번째 결혼을 하게되는데요,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며 1995년 이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이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박원숙의 명의 도용부터 부도, 그리고 박원숙이 힘들게 모은 재산까지 탕진하였기 때문인데요,
그녀는 이혼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전 남편의 막대한 빚더미를 청산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기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하는데요,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잘한 거라고는 아들 낳은 것 밖에 없는 것 같아. 내 아들 범구, 걔는 나한테 아들 이상이야, 냠편이고 친구고 아들이고 그래” 라고 아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정도로 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200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방송 제작사 PD로 근무하던 박원숙의 아들은 서울 강서구 한 도로에서 트럭과 추돌해 숨진 아들은 당시 나이가 34세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박원숙은 방송을 통해 “과거에 우리 아들하고 같이 골프를 시작하려고 골프채를 사줬다”며 “골프채 사서 자동차에 딱 싣고, 그 다음주에 사고가 났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요,
박원숙은 “사고 이후 내가 아들의 골프채를 보관하고 있으려 했다”며 “그런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안 되겠더라. 업체에 전화해 트렁크에 있던 거 그대로 환불했다”고 당시 겪은 아픔을 전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추스리기도 전에 박원숙은 드라마 촬영을 했다고하는데요,
아들이 사고 난 다음주 촬영은 공교롭게도 아들을 잃은 엄마 연기였다고 합니다.
박원숙은 “극 중에서도 아들을 잃은 엄마 연기를 해야 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이 안 나. 너무 눈물이 안 나고 ‘여지껏 해온 연기가 거짓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있던 박해미는 “넋을 잃었다는 표현이 맞을까?”라고 물었고, 박원숙은 “글쎄 모르겠어… 눈물이 안 나왔어 그냥. 그 비슷한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야 하잖아. 근데 눈물이 안 나”라고 답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한편 한 방송에서 박원숙과 친분이 있던 성현아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성현아는 박원숙에게 칼국수를 대접하며 지난 십수년간 여러 아픔을 겪고 여덟 살 아들을 예쁘게 키워낸 근황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떤 힘든 상황도 버티게 해주는 삶의 원동력이 바로 아들”이라며 이야기하며 스피커 폰으로 아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먼저 아들을 떠나보낸 박원숙 앞에서 굳이 둘이 있는 자리에서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세번의 이혼과 아들의 죽음까지, 너무 힘든 인생을 걸어온 그녀에게 앞으로는 꽃길만 펼쳐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