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유명해진 현진영은 대한민국 1세대 힙합 가수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박남정등의 후배로 댄스계에서도 유명했던 그는 춤, 노래실력을 모두 갖춘 최고의 가수로 유명세를 탑니다.
현진영에 따르면 어릴 적 한남동 유엔 빌리지에서 흑인 친구들과 함께 댄스 배틀을 하면서 놀고 컸다는 그는 늘 유복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힘든 인생을 살았다고합니다.
현진영이 14살 때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신 후 큰 충격으로 수많은 정신병을 앓게 되었다고하는데요,
특히 부유하기만하던 현진영은 어머니의 암 치료를 위해 집 안의 모든 재산을 쏟아부으며 사정도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 댄서로 생계 유지를 하던 그는 두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고 하는데요,
한순간에 집안의 가장이 된 부담감에 현진영은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렸다고합니다.
하지만 쓰레기 줍는 아저씨 배 근처에 떨어지며 목숨을 구했다고하는데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살던 그의 댄스 팀 단장이 그의 6개월치 임금을 떼먹고 도망가면서 현진영의 집 가스가 끊겼다고합니다.
그러자 현진영은 또 충동적으로 동호대교에서 몸을 던졌다고하는데요,
물에 빠지자마자 본능적으로 헤엄치며 물 밖으로 나온 그는 두번의 죽음을 시도한 끝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며 유명한 가수가 되며 금전적으로도 풍족해졌지만 과거의 힘든 상황으로 공황장애, 우울증, 인성인격장애 등이 남아 있던 그는 마약에도 손을 댔다고 하는데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그는 30년 전 회당 출연료가 1억 원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엄청났지만 또 다시 약에 손을 대며 그의 커리어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는 온전치 못한 상태로 지금의 아내 오서운과 교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아내는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자고 제안했지만 당시 정신병원은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현진영은 “안그래도 과거 실수에서 꼬리표가 있는데 내가 거기까지 가서 꼬리표를 다는 것은 싫다”며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정신병원을 가던지, 나랑 헤어지든지 결정하라”고 강경하게 말하며 그를 결국 3개월간 폐쇄 병동에 입원 시켰습니다.
아내 덕분에 많이 회복된 그는 2011년 아내와 혼인신고를 올리며 부부가 되었습니다.
한 예능에서 현진영을 만난 무속인이 “지금 아내를 만나지 않았으면 이 곳에 없을 수도 있었다. 결혼을 정말 잘했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를 만나고 많이 회복된 현진영에게는 한명의 은인이 더 있다고하는데요,
바로 SM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이수만입니다.
SM소속이던 현진영은 이수만에게 금전적,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하는데요,
그의 아버지가 신부전증에 걸려 병원비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이수만은 병원비와 생활비를 데뷔할때까지 지원해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현진영이 불법 약으로 구속되자 그의 음반은 물론 모든 상품을 폐기 시킬 정도로 막대한 손해를 봤다고하는데요,
이수만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개인 소유의 월미도, 방배동 카페를 팔면서 SM의 부도를 막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건등으로 이수만을 아버지라고 표현한 현진영은 아직까지도 이수만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그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로 인해 그는 현재는 완전히 회복하고 오히려 불법 마약 퇴치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여러 조언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치료를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 덕분에 대중들의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앞으로도 건강하고 좋은 음악을 하는 모습만 보여주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