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통통한 체격으로 지금의 이수근, 김병만 같은 단신 캐릭터 예능인의 원조였던 이기동은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입니다.
MBC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전성기 시절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에 필적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하는데요,
이기동은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닭다리 잡고 뜯어 뜯어”, “쿵다라 닥닥 삐약삐약’ 등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인기 코미디언 배삼룡과 ‘땅딸이 이기동, 비실이 배삼룡’으로 활동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그는 1979년 요구트르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업을 하던 배삼룡의 영향을 받은 듯한 그는 야심차게 사업을 시작하지만 1980년 여름, 대리점 사장들에게 돈은 받은 상태에서 물건을 만들지 못하여 망하면서 사기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1981년 석방된 이후 ‘웃으면 복이와요’에 잠시 출연했지만 방송에서 사라지게 되며 밤무대를 전전하다 1987년 간염 후유증으로 향년 53세에 사망하게됩니다.
한편 한 언론매체는 배삼룡의 증언을 인용해 이기동이 삼청교육대에서 고초를 겪은 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이기동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소문이 퍼져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삼룡의 말에 따르면 당시 ‘3김’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이기동은 3김이 정치규제에 묶이자 ‘유명 연예인도 이렇게 잡혀간다’는 협박용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결국 전두환 정권의 삼청교육대가 이기동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충격적인 주장인 것입니다.
삼청교육대는 제4공화국 말기인 1980년대 전두환이 치안보호라는 명분으로 설립하였는데요,
이면적으로는 정치범 수용소이자 노동교화소로 법적 근거가 없이 위헌적인 초법적 징벌기구였습니다.
영장도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잡아간 삼청교육대는 10대 학생, 일반인 구분없이 모두 잡아갔는데요,
국민의 입을 막기 위한 삼청교육대로 체포를 하기 위해 사회질서, 사회 풍토 문란자를 명분으로 마구잡이식으로 훈련 대상을 잡아갔습니다.
어머니를 마중나간 15세 소년을 불량배라고 잡을 정도로 무자비했던 이 곳에 코미디언 이기동 역시 사업 부도로 잡혀간 것입니다.
이 곳은 단순 군대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닌 무서운 생활 수칙이 존재했는데요,
도망자나 반항자는 사살을 하며 TV시청이나 면회도 금지되어있었습니다.
깨진 유리 조각 아래서 포복을 하거나 배설물에 빠트리는 등 비인간적인 훈련이 지속되었으며 4주간의 기본 교육이 끝난 후에도 강제 노역을 시키는 등의 행동을 일삼았다고하는데요,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54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는 397명, 정신장애등의 상해자는 2,678명이라고 발표되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부대 소속이던 교관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의 부대에서만 3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교육기간동안만 11명이 사망한 것을 목격했다고 밝혀 공식적으로 밝힌 사망자수는 믿을 수 없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시체를 인근 강에 유기하거나 소각장에 무자비로 화장시켜버릴 정도로 끔찍한 이 곳을 벗어나도 전과자 취급을 당했다고하는데요,
암울한 시대에 대중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코미디언 이기동 역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운의 코미디언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