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생 배우 박용식은 전두환 닮은 꼴로 유명합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연기의 꿈을 안고 연극 활동을 하던 그는 대학교 2학년때 선배의 눈에 띄어 김용건과 함께 극단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1967년 동양방송 4개 틸런트로 인지도 있는 조연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그에게는 큰 시련이 닥쳐왔는데요,
바로 전두환이 쿠데타로 집권을 하면서 전두환 닮은 꼴이었던 그는 단지 전두환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금지를 당한 것입니다.
그렇게 5년정도를 방송에 출연하지 못한 그는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후 다시 방송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전두환 닮은 꼴로 더욱 유명해진 그는 정치드라마 ‘제 3공화국’, ‘제4공화국’등에서 전두환 역할로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한 예능에 출연한 그는 “제가 그 분을 닮고 싶어서 닮았겠습니까. 그 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 정지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고 말하여 당시 억울했던 심경을 밝혔는데요,
박용식은 이어 “연기를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생활고를 겪게 됐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7년 동안 참기름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며 “분하고 화도 나고 억울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유지만 당시 방송계는 정치관련 발언만으로도 방송 정지를 먹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실제로 직접 박용식을 출연금지 시킨 적이 없다고하는데요,
신군부 세력과 방송사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희생양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1991년 박용식은 전두환의 서울 연희동 자택에 초대되어 직접 그를 만났다고 하는데요,
이 자리에서 전두환은 “박용식씨가 나때문에 굉장히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하며 “현직을 떠나보니 몰랐던 일이 많더라.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전두환은 청와대에 투서했으면 당장 해결해줬을 거라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는데요,
이 사건으로 인해 박용식은 “그 때 당시 피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다. 그 이후로 좋은 일은 영원히 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며 “그 이후 좋은 마음에서 긴장하고 살자”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전두환과의 만남에 대해 “아무래도 멋쩍은 건 사실이었다”며 “사람이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는 것 같다. 전생에 무슨 숙명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방송계에 들어서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에게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쳤는데요,
영화 ‘시선’의 촬영을 위해 한달 동안 캄보디아에 방문한 박용식은 촬영 막바지 설사를 하며 심한 고통을 호소하였다고 합니다.
남은 분량을 빠르게 마친 후 일정을 앞당겨 귀국한 박용식은 유비저균에 의한 폐혈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동남아시아등의 토양과 오염된 물에 퍼져있는 균으로 감염되면 장기에 고름이 차고 폐렴과 폐혈증을 동반한다고 합니다.
백신도 없어 치사율은 40%에 달하는 질병에 걸린 박용식은 결국 경희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사망하게 됩니다.
국내 유비저균 사망 첫 사례로 향년 67세로 사망하게 되는데요,
파란만장했던 배우 생활 끝에 행복을 찾은 듯한 그에게 다시 찾아 온 죽음에 많은 팬들과 시청자들은 안타까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