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 연기를 잘하던 개그맨 정명재가 27년 동안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안타까운 소식은 전해왔습니다.
정명재는 1980년 TBC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술주정 연기와 중국어 개그, 그림 개그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하지만 길지 않은 활동 후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며 연예계를 떠났습니다.
사업을 하는 이유도 코미디언 일이 어렵게 된 것도 있지만 기러기 아빠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도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최근 MBN ‘특종세상’에 출연한 정명재는 1995년부터 아내와 자녀를 모두 미국으로 떠나보내고 27년째 기러기아빠로 생활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는 “하루는 아내가 나한테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서 공부를 시키자고 해서 반대했다. 나중에 커서 어학연수는 괜찮지만 어렸을 때 보내는 거는 아닌 것 같다고 반대를 했다”라며 결국 아이들을 위해 유학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방송에서도 세대교체가 되어 설 자리가 없던 정명재는 여의도에서 작은 이벤트 회사를 차렸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IMF로 사업도 힘들고 개그맨으로도 일자리가 줄어들자 매달 보내는 유학비조차 빠듯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던 그는 “지인이 도와줘서 가게도 조그맣게 차리게 되고 열심히 했다. 자주 갈 수가 없었다. 일상에 쫓기는 것도 있고 미국에 왔다 갔다 하면 외환위기 때나 그 이후에 보면 한번 갔다 오면 그 당시 우리 돈으로 700만원 1000만원이 없어지니까. 그 정도 돈이면 차라리 미국에 보내는 게 나으니까 열 번 가는 게 한 번 가게 되는 거다”라고 경제적인 이유로도 자주 오가기 힘들었던 현실을 털어놨습니다.
이 날 정명재의 가게를 찾아온 최양락이 함께 술을 마시며 “25년 됐으면 안 돌아오는 것 아니냐”며 “이미 끝난 거 같은데 형이 순진하게 아직도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이어 최양락은 “가족이란 개념은 같이 살아야 가족이지 어렸을 때 교육하고 취직했는데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건 좀 (너무하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는데요,
정명재는 “아이들이 거기서 공부를 다 마친 지 얼마 안 됐다. 지금은 직장 생활하고 있는데 돌아올 것”이라며 “내가 가고 싶은데 영어를 못한다. 이제는 한국어 잘하는 걔들이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명재는 “애들이 한국에 있어도 어느 정도 나이 먹으면 나가 산다고 그런다. 그리고 결혼하면 또 멀어진다. 그거나 이거나 장소만 한국과 미국일 뿐이지 똑같다”며 “애들한테 기대하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특히 정명재는 아이들과 아내를 유학보낸 후 반지하 원룸에서 라면이나 국수 등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공개되어 더욱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두 명의 아이와 아내의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정명재는 동료들의 경조사조차 챙기지 못했고, 오래된 자동차는 손잡이마저 떨어진 모습을 공개하였는데요,
이렇게 고생하며 기러기로 살았지만 아이들은 딱 세 번 봤다는 정명재는 2003년에 방문했을 때 딸이 아빠를 서먹해서 피했다고 말하며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정명재는 “노래 가사 중에 조용필씨가 부른 노래 가사가 있어요.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난다'”고 자신의 심경을 노래로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리고는 “가족, 가정이라는 것이 희노애락이 있어도 꽃밭처럼 다 뭉쳐 살아야 되잖아”라고 말하며 “저는 외국에 잠깐 어학연수 보내는 건 괜찮지만 일찍부터 보내서 미국 생활에 젖는거는 부모님들에겐 반대하고 싶다”고 솔직한 생각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다시 함께 사는 꿈을 버리지 않은 그는 바닷가에서 그림을 그리며 가족들과 함께 할 집을 꿈꾸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는 “바다도 아름답지만 오다보면 예쁜 집들이 있지 않나. 나중에는 가족이랑 같이 모여서 예쁜 꽃밭 같은 집을 만들고 싶다. 차근차근 그 길을 향해서 걸어가는 거다.”라고 자신의 바람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