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데뷔와 동시에 단번에 스타가 된 가수 이현우는 데뷔곡으로 KBS 가요톱10 6주 1위를 하는등의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시엔 굉장히 드물었던 미국 교포 출신의 이현우는 세련된 오렌지족이라는 느낌으로 쿨한 매력을 뽐내며 많은 팬을 보유했는데요,
조곤한 말투와 피곤한듯하지만 세련된 그의 음악은 현대적인 미국식 댄스음악의 시촐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도 큰 곡이었습니다.
데뷔곡 ‘꿈’에 이어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해’, ‘이 거리엔 비가’등으로 초대형 스타가 되어 승승장구할 것 같던 이현우는 인기를 이어가지 못했는데요,
연예계 막장 범죄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수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살인을 제외하고는 안 해본 범죄가 없을 정도로 그랜드 현우라고 불리기도 했는데요,
잘 나가던 그는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였습니다.
활동 중단 후 다시 음반을 내며 방송에 다시 발을 들였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요,
그러던 중 1997년 발표한 ‘헤어진 다음 날’이 히트를 치며 재기에 성공하였습니다.
훗날 자신의 자전 에세이에서 그는 “분위기에 휩쓸려 범한 작은 실수가 한 인간을 회복 불능의 절망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 깨달음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계기는 바로 붑법 약사건으로 구속된 일이었다. 그 사건은 내게 끝이 어딘지도 모를 절망을 안겨줬다.” 라며 당시 사건에 대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 것이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렇게 큰 범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는데요,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다. 그토록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는데요,
심지어 미국 시민자인 그는 국제면허증의 유효기간이 지난 상태로 무면허 음주운전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이후 별다른 자숙 기간도 없이 촬영중이던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자동차 광고를 찍어 큰 논란이 되었는데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현우가 자동차 광고를 찍자 “교통범법자가 자동차를 광고하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비난이 잇따랐지만 이현우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고, 광고는 그대로 방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현우에게 김구라는 “이현우씨는 할 것 안할 것 다해보지 않았냐, 대마는 미국 국적이라 이해한다고 쳐도 음주운전은 큰 죄가 아니냐? 그것도 두번씩이나”라고 이현우를 대놓고 비난했습니다.
이현우는 “내가 잘 몰랐다. 그 바람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자숙했다”고 말했지만 김구라는 한번 더 “음주운전에 대부업 광고까지 찍고 강원민방 인수설까지 이야기가 있었는데도 인기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해 그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2008년 실적이 좋지 않았던 상장사 GBS를 105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여 주가가 급등했는데요,
GBS는 당시 강원 네트워크를 인수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이현우는 GBS 최대 주주 실소유자로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되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현우는 자신이 미국인이란 점을 간과했습니다.
국내 현행 방송법상 외국인은 중계 유선방송사업을 할 수 없었기때문에 인수계약을 취소하게 되는데요,
네티즌들은 이런 기본적인 사실은 알고 있었을텐데 소문만 무성하게 내놓고 주가를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재기했습니다.
많은 사고를 치고도 그는 꿋꿋하게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며 불사조, 신의 아들이라는 조롱섞인 별명이 붙기도했는데요,
심지어 201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DJ와 TVN예능등에 고정 출연하며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미국인이어서 병역의무는 없지만 거주장소와 주 활동무대가 한국인 만큼 병역이행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정서상 병역기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했는데요,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으로 병역의무로 비판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