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장사장~반갑구만 반가워요’ 라는 유행어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은 유행어인데요,
특히 옛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자주 등장하며 옛추억을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이 유행어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개그맨 조금산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1984년 개그 콘테스트에서 이봉원, 임미숙등과 함께 개그맨으로 선발되며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산은 유머1번지라는 개그프로를 통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유행어 ‘반갑구만 반가워요’를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유머1번지의 ‘동작그만’이라는 코너를 통해 김한국, 이봉원과 함께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3년동안 코너가 이어졌을 정도로 당시 코미디 프로의 인기는 엄청났다고 하는데요,
이후에도 조금산은 최양락, 임미숙, 이상운 등의 지금의 중년 코미디언들을 스타로 만들어 준 ‘쇼 비디오자키’에 출연하며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훗날 조금산의 말에 따르면 비디오자키 출연 당시 조금산은 함께 출연했던 개그우먼 임미숙을 짝사랑했다고 하는데요,
조금산은 친분이 있던 김학래에게 임미숙에 대한 연애상담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학래는 임미숙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조금산이 임미숙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듣다보니 그때부터 임미숙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결국 김학래는 연애상담을 해주다가 임미숙에 대한 사랑이 생겼고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된 웃픈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금산은 인기스타들만 찍는다는 대기업 식품의 여러 광고를 찍고 심형래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는데요,
하지만 1990 이후 인기가 급락했고 그는 2002년 돌연 활동을 중단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을 보고 더이상 웃지않는 관객들에 충격받아 미국으로 떠났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미국 LA 한인타운에서 홈쇼핑 채널 쇼호스트로 활동하며 가족과 새로운 삶을 꾸렸다고 합니다.
하루는 우연히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된 선배가 연구도 하지 않고 방송을 하는 조금산의 나태함을 지적하였고 이에 충격받은 조금산은 쇼호스트와 방송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방송에 대해 공부하며 방송의 참맛을 다시 알게된 조금산은 다시 방송인으로 도전하기 위해 2010년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미국에 가족을 두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며 방송에 대한 꿈을 꿨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잘나가는 동료 김학래, 임미숙 등과는 달리 방송가는 그를 거의 찾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뮤지컬과 여러 사업, 방송 등 닥치는 일은 모두 하면서 성공의 문을 두드렸지만 잘 풀리지 않았고 사업마저 실패하며 거액의 빚을 졌다고 하는데요,
사업부진 및 여러 실패로 그의 우울증은 점점 더 심각해졌고 지인들에게 그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상살기 벅차다”라고 한탄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그에겐 너무 무거웠던 것일까요?
조금산은 결국 2017년 대부도 근처에 차를 세운 뒤 번개탄을 피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